글: 후유(煦濡) 1900년 6월 21일, 서태후는 광서제의 명의로 각국에 선전포고하는 조서를 내린다. 서태후는 서방열강의 여러가지 죄행을 나열했다. "삼십년동안, 우리나라가 인자하고 후덕하게 다독거리는 것을 빌미로 그들은 갈수록 발호하며 우리나라를 핍박하며, 우리의 토지를 침범하고, 우리의 인민을 유린하고, 우리의 재물을 강탈해갔다." "그들은 스스로 교화지국이라고 하면서 예의없이 횡행하고 병력과 무기의 날카로움을 믿고 이렇게까지 했다." 서태후는 이렇게 분노를 표시한 후, 마지막에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는 선전구호를 내놓는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만고에 수치를 남기기보다 들고 일어나 자웅을 겨뤄보아야 한다!" 이 선전포고를 전환점으로 하여, 청정부는 정식으로 서방열강과 갈라지고, 중국과 서방열강의 전..
글: 염화몽유(拈花夢遊) 어옹(漁翁) --- 유종원(柳宗元) 어옹야방서암숙(漁翁夜傍西巖宿), 효급청상연초족(曉汲淸湘燃楚竹) 연소일출불견인(煙銷日出不見人), 애내일성산수록(欸乃一聲山水綠) 회간천제하중류(回看天際下中流), 암상무심운상축(巖上無心雲相逐) [직역] 고기잡는 늙은이가 밤에 배를 서쪽산의 자락에 정박시키고 유숙한다. 날이 밝은 후에 그는 맑은 상수(湘水)의 물을 마시고 초죽(楚竹)을 태운다 해가 떠오르자 안개가 걷히고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 청산녹수의 사이에서 흘러나올 뿐이다. 되돌아보니, 고깃배는 이미 하늘 끝에서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고 있고, 바위 위에는 무심한 구름이 서로 쫓아가고 있다. [논쟁] 유종원이 영주(永州)로 좌천된지 칠년째 되던 해 이 육구소시(六句小詩)를..
중국 5대 고전소설 가운데 수호전의 여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관점을 분석 고대 문인들은 유가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여자들에 대하여는 일관되게 경시, 천시 내지는 적대시하였다. 공자님의 말씀 중에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 힘들다"는 말의 영향은 천년이래로 문인들이 여인을 보는 관점이 되었다. 시내암은 비록 봉건사회에서는 비교적 깨었던 문인이었지만 그도 당시의 "정주이학"의 정통사상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고 봉건예교가 최고도로 발전했던 시대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당시의 문인들은 어려서부터 봉건전통교육을 방아서 여인들에 대하여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그가 ‘수호전(水滸傳)’에 쓴 여인들은 많지도 않았다.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이 십여 명 중에서 개별적인 예외를 ..
수호전의 최초 원 작가가 누구이며 소설의 원 제목은 무엇인가 ‘수호전(水滸傳)’의 명확한 저자는 알 수 없으며 수많은 작가(作家)들의 손을 거쳐서 발전되어 왔다. 저자(著者)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은 시내암(施耐庵)으로 그 밖에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로 잘 알려진 나관중(羅貫中), 시혜((施惠), 곽훈(郭勛) 등이 있다. 시내암(施耐庵) : ‘수호전(水滸傳)’의 저자로 가장 잘 알려진 시내암(施耐庵)이 ‘수호전’의 최초의 판본인 100회 본을 완성하였다고 전하며 시내암(施耐庵) 혼자의 창작이라는 설과 나관중(羅貫中)과의 공동창작이라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이설도 있는 데 명나라의 고유(高儒)가 집필한 ‘백천서지(百川書志)’에 의하면 ‘수호전’은 시내암이 집필하고 후에 나관중이 편집하여 ..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무송의 본적은 하북인가 산동인가 수호전(水滸傳)에 나오는 무송(武松)의 고향으로 직예광부(直隸廣府) 청하현(淸河縣)으로 공송장인데 무송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데 무송가(武松家) 무송공원(武松公園) 등인데 무송문화지향(武松文化之鄕)이라 한다. 무송(武松)은 하북과 산동의 경계인 경양강(景陽岡)에서 호랑이를 잡은 전설이 있는데 형 무대를 찾아간다. 청하현(淸河縣) 교외에는 무대랑(武大郞)의 명대고묘가 있는데 무씨는 청하현의 대가족으로 고묘(古墓)가 보존되고 있다. 무대랑(武大郞)은 본명이 무식으로 후손들이 수묘(守廟)하고 있는데 문화혁명 때 파괴되어 1996년 다시 복원되었다. 무대랑(武大郞)은 명대 진사출신으로 청하현(淸河縣)에 이거한 무씨 시조로 산서에서 이주했다 한다. 무대랑..
만약 가정하여 시내암이 송강을 급사시켰다면 누가 양산박의 두목이 될까 소설(小說)은 현실의 인생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허구적(虛構的)으로 서술한 산문체(散文體)의 문학양식 또는 서사문학이다. 소설이라는 명칭은 원래 동양의 경우는 오늘날의 서사학적 개념과는 다소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동양 기록에 나타난 것은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과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등에서였다. 이들 기록을 보면 소설이라는 말은 본래 대도(大道)와 거리가 먼 꾸민 말로서 명예를 구하는 속된 말 나부랭이 또는 패(稗), 즉 세미(細米)와 같은 가담항어(街談巷語)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즉, 패관(稗官)들에 의하여 채집(採集)되어 제왕이나 통치자(統治者)의 참고자료가 되는 시정이나 길..
수호전 옥에 티는 원나라 때 발명된 화포가 송나라 때 등장한 것이 실수 고대 화약의 발명은 도가(道家)의 연단술(煉丹術)과 깊은 관계가 있다. 초석(硝石, 질산칼륨), 유황, 숯으로 된 세 가지의 물질을 혼합하여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단약(丹藥)을 만들고자 했던 위진(魏晉)시대의 연단술사(鍊丹術士)들이 그 과정에 폭발현상(爆發現象)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의 재료로 만들어진 물질이 병을 치료하는 약물(藥物)로 여겨서 '불이 붙는 약'이라는 의미로 '화약(火藥)'이라 불렀다. 당나라 초기 의술가 손사막(孫思邈)은 ‘단경내복유황법(丹經內伏硫黃法)’이라는 책에서 초석(硝石)과 유황(硫黃) 그리고 숯을 적당히 혼합하여 점화(點火)하면 강력한 화학반응(化學反應)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록하..
영웅이 호색한 아니라면 수호전에 나오는 무송은 진짜 호걸이고 사내대장부인가? 예로부터 '영웅(英雄)'은 '호색(好色)'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대체 호색해야 사나이라는 건지 진실한 사랑이 아니면 몸을 바치지 않아야 사나이라는 건지 많이 헷갈리게 하는 의문점(疑問點)이다. 여하튼 ‘수호지’는 원말명초(元末明初)에 시내암(施耐庵)이 쓰고 나관중(羅貫中)이 손질한 것으로 4대 기서(奇書) 중의 하나이다. 수령인 송강(宋江)을 중심으로 108명의 유협(遊俠)들이 양산 산록 호숫가에 산채를 만들어 양산박(梁山泊)이라 일컬었으며 조정(朝廷)의 부패를 통탄하고 관료의 비행에 반항(反抗)하며 사회악을 처단하고 정의를 위해 살다간 호걸(豪傑)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수호지(水滸志)’는 탁월한 인물 묘사와 정의파 호걸들의..
양산박 조직집단 인맥현상 중 누가 송강의 최측근 심복인가? 표자두 임충(林沖, 천웅성, 제6위)이 백의수사 왕륜(王倫, 양산의 제1대 천왕)과 싸운 이후 탁탑 천왕 조개(晁蓋)는 임충, 지다성 오용(吳用, 천기성, 제3위)등의 지지 하에 양산박(梁山泊)의 제2대 천왕이 된다. 그러나 조개가 사문공(史文恭)의 독화살에 목숨을 잃은 후에 양산의 두목은 산동의 급시우(及時雨) 송강(宋江, 천괴성, 제1위)이 된다. 심복(心腹)은 중국의 여하한 조직에서도 존재하는 인맥현상(人脈現象)이다. 그리고 특수 환경 하에서 특수문제(特殊問題)를 해결하는 채널의 하나이다. 하나의 울타리에는 세 개의 말뚝, 사나이 한 명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3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두목은 두목대로 어려운 점이 있고 일부 특수한 일은 심복들이..
대부분 마누라를 두지 않은 수호지의 남자들은 왜 이상한가? 수호전의 주인공들인 양산박 호걸들을 여러가지 개성있는 인물들로 재해석하면서 작품에 신선함을 부여했다. 보면 볼수록 오묘한 세계관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수호전을 만나 작품의 탄생 배경과 전달하고자 하는 의중을 알아봤다. 우선 수호전의 인물들이 결코 정의로운 영웅들이 아니다. 불의를 못 참기도 하지만 자기 분을 못 이겨 살인을 하기도 하는 인물들이다. 그것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다. 원래 정의로우면서 사심없이 정의만을 위해 악과 싸우는 영웅은 지금의 트렌드는 아닌 것 같아요. 악이 악을 응징하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권선징악의 그것보다 더 매력있게 느껴집니다. 다만 이렇게만 전개되면 정의는 아무 힘이 없는 것으로 스토리가 나갈 수도 있어서 양산박의..
일개 운성현 압사인 송강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나왔는가? 송강(宋江)은 양산(梁山)에 오르기 전에 송나라 운성현(鄆城縣)의 "압사(押司)"라는 직위의 일개 하급관리였다. 관직이 높지도 않은 송강(宋江)이 "산동, 하북에 이름을 날리게 되고" 또한 사람들이 그에게 만물을 구할 수 있는 "급시우(及時雨, 때맞춰 내리는 비)"라고 불렀다는 것은 바로 그가 "평생 그저 강호(江湖)의 사나이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할 뿐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와서 의탁하면 높고 낮고 간에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없었고 집에 머물도록 했으며 종일 같이 다니면서 귀찮아하지 않았다. 만일 어디로 떠나면 있는 힘껏 자금(資金)을 지원해주고 돈을 흙처럼 마구 뿌렸다. 사람들이 그에게 돈이나 물건을 요청(要請)하면 물리치는 법이 없었다...
중국의 금주정책과 양조비법 및 수호전에 나오는 주점의 서비스인원 중국은 예로부터 금주정책(禁酒政策)을 시행하지 않아 양조비법(釀造祕法)이 쭉 전수돼 왔다. 덕분에 전국 어디를 가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술을 마실 수 있다. 지방 특산주(特産酒)는 우선 가격이 싸고 또 싸기 때문에 가짜가 적어 믿을 만하다. 무엇보다 그 지방의 음식과는 궁합(宮合)이 잘 맞는다. 중국 속담에 “외진 데서 좋은 술 나고 깊은 산에 명차 있다(僻鄕出好酒 深山有名茶)”는 말이 있다. 중국 대륙처럼 넓은 땅에 좋은 술이 어찌 한두 가지뿐이겠는가? 예를 들어 기름진 음식이나 매운 요리가 많은 산동(山東)·사천(四川) 지방에서는 향이 강한 바이주(白酒)를 택하고 담백하고 해물이나 채소요리가 많은 광둥(廣東)·상하이(上海)에서는 황주..
호북성 무당산 무당파의 시조는 태극권의 창시자 장삼풍(張三豊) '북에는 소림이 숭상(崇尙) 받고 남에는 무당이 존중(尊重)받는다(北崇少林, 南尊武當)'는 말이 전해진다. 소림사(少林寺)는 중국 허난성(河南省)의 정저우(鄭州) 숭산(嵩山)에 있는 사찰이다. “위서(魏書)” 제114 권 ‘석노지(釋老志)’를 보면 태화 20년인 496년에 북위 효문제(孝文帝)가 464년에 중국으로 와서 인도 불교(佛敎)를 전파하기 시작한 인도 승려 발타(跋陀)를 주지로 하여 소실산음에 소림사(少林寺)를 창건하였다. 그리고 북주시대(北周時代)에 파괴되었으나 수 시대(隋時代)에 문제(文帝)에 의해 재건되었다. 태화 20년인 496년에 북위 효문제의 명으로 인도 승려 발타(跋陀)를 주지로 하여 창건되었을 당시 소림사(少林寺)의 구..
살인 방화 및 강도를 서슴지 않는 이규는 어떻게 세 번이나 살아남았는가? 어떤 조직(組織)이든 조직이기만하면 크든 작든 모두 규율(規律), 규정(規定)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모래알이 되고 성장할 수가 없다. 조직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成長)하고 나면 반드시 법률(法律), 법규(法規)가 필요하다. 심지어 조직이 성장하는 특수한 시기에는 규율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조직지도자는 심지어 사건을 만들어 법규를 수립(樹立)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읽어본 사람이면 모두 알 것이다. 조조(曹操)는 군대가 농민의 논밭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이 탄 말을 농지(農地)로 뛰어들게 한 후에 자신이 아끼는 수염을 잘라버리는 징벌(懲罰)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삼국연의에서 제갈량..
청나라 중화민국 무술가인 황비홍의 무공은 얼마나 뛰어났을까? 황비홍(黃飛鴻)은 청나라와 중화민국의 무술가(武术家)이고 한의사(韓醫師)이며 항일 독립 운동가(抗日獨立運動家)이다. 출생 이름은 황석상(黃錫祥)이나 황비홍(黃飛鴻)으로 개명하였으며 자(字)는 달운(達雲)이다. 광동성 난하이 현 출신으로 소림 계통 남권의 일종인 홍가권(洪家拳)의 일대종사(一代宗師)이자 명의(名醫)로 활동하면서 힘없는 민중들을 구하고 흑기군(黑旗軍)의 유영복(劉永福)과 함께 항일(抗日) 독립운동을 펼쳐 중국인들의 영원한 민족 영웅이 되었다. 황비홍(黃飛鴻)의 마지막 여제자(女弟子)였다가 1915년 그의 4번째 부인이 된 막계란(莫桂蘭)은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고 황비홍(黃飛鴻)이 죽은 훗날에는 곽원갑(霍元甲)의 친척 조카인 곽..
수호전과 금병매로 유명해진 만고의 악녀인 반금련은 실존인물일까? 반금련(潘金蓮)은 수호지와 금병매의 등장인물로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성문 밖 가난한 바느질집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전족을 했는데 맨발이 작고 예뻐서 금련(金蓮)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집안이 어려워지자 그의 아버지는 남의 집에 어린 그녀를 팔았고 그 곳에서 화장하는 법, 악기(樂器) 다루는 법, 교태(嬌態)부리는 법을 배웠다. 그 후 장대인(張大人)이라는 어느 부잣집에 종으로 팔려가 하녀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어 그 부잣집의 영감 장대인(張大人)이 예쁘게 성장한 반금련(潘金蓮)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가 어느 날은 급기야 장대인(張大人)한테 강제로 검열삭제를 당하려했다가 그만 주인아주머니 여씨(余氏..
만다라 진화 및 황니강 생신선물 탈취한 수호전에 나오는 몽한약 수수께끼 몽한약(蒙汗藥)의 사전적 의미로는 신경계통(神經系統)에 작용하여 일시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의식(意識)을 잃게 하거나 몸의 일부분의 감각(感覺)을 잃게 하는 약을 일컫는다. 중추신경(中樞神經) 기능을 마취하거나 통각중추(痛覺中樞)의 감수성을 감퇴시키는 전신 마취제(痲醉劑)와, 국소의 지각 신경 말초를 마비시키는 국소 마취제가 있다. 만다라(曼陀羅)는 상서로운 꽃이다. '만다라'라는 이름은 종교전설(宗敎傳說), 신화이야기 및 대량의 의학문헌(醫學文獻)에서 빈번하게 출현한다. 그래서 동서방의 문화 속에 만다라(曼陀羅)는 이미 간단한 꽃 이름이 아니다. 자신의 독특한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다. '수호전'의 몽한약(蒙汗藥)은 주요성분이 만다..
황제가 하사한 천리마 척설오추의 실제 이름은 적토마라는 일부 견해에 대하여 오추마(烏騅馬)의 실제 이름은 "추(騅)"로, 관련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항우가 해하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했을 당시에 최후를 직감하고 부른 ‘해하가(垓下歌)에서 그 애첩이었던 미녀 우희(虞姬)와 함께 언급될 뿐이다. 이 대목에서 사마천(司馬遷)이 덧붙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후 항우는 마지막에 자신에게 강동으로 피신 할 것을 권한 오강의 정장에게 천리마를 주었는데 이 '추(騅)' 라는 언급은 없지만 항우가 타고 다니던 명마였다고 하니 아마 정장에게 준 말이 바로 오추마(烏騅馬)였을 것이다. "추(騅)"에 대한 기록은 고작 이것 뿐 인지라 이 말이 나름 준수..
수호전에서 양산박 영웅호걸의 동고동락한 생사형제 간 개인친분에 의한 파벌분석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宋江)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호한들 대부분이 처자식 없는 홀아비들로 묘사한 배경 중국인들은 일상의 관용어로 ‘핍상양산(逼上梁山)’이라는 말을 쓴다.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에 개입(介入)할 때 쓰는 말이다. 관리의 핍박(逼迫)에 못 이겨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처자식을 버리고 정든 고향을 떠나 양산박에 모일 수밖에 없었던 ‘수호지(水滸志)’의 주인공들, 1백8인의 크고 작은 두령들이 겪는 자초지종(自初至終)이 중국인의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만큼 ‘수호지’는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한자어 권에 속한 동양인(東洋人) 모두가 즐겨 읽는 민초의 삶과 애환(哀歡)이 담겨있는 민중의 소설인 것이다. 소설연구가들의 논증에 따른다면 송대의 선화유사(宣和遺事)라는 기록에 나타나는 36인의 도둑이야기를 ..
천고의 주도이며 만고의 주당인 무송과 노지심은 누가 주량이 더 셀까 수호전(水滸傳)은 바로 술을 마시는 역사이야기이다. 무송(武松)은 경양강(景阳冈)에서 연이어 18사발의 술을 마셨는데 이것은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일 뿐이다. 노지심(鲁智深)은 구운 고기를 가지고 이삼십 사발을 마셨다. 정말 탄복(歎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도대체 누구의 주량(酒量)이 더 세다고 할 수 있을까? 수호전(水滸傳)에서 술은 노주(老酒)와 촌주(村酒)로 나뉜다. 술의 품질로 봐서는 고급술과 하급술이다. 실제로는 사람을 귀족과 평민의 두 등급으로 분류(分類)하는 것이나 같다. 자연스럽게 노주(老酒)와 촌주(村酒)의 칭호가 나타났다. 촌주(村酒)는 일종의 증류를 하지 않은 소주(小酒)이다. 품질이 낮다. 일반..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박 108호한의 서열을 정한 잠규칙 정확성 입증 중국 원대 시내암(施耐庵) 또는 명대 나관중(羅貫中)의 저작으로 알려진 ‘수호전(水滸傳)’은 상이한 판본이 많이 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중 ‘100회본’은 북송 말기 송강(宋江)을 수령으로 하는 도적의 무리가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양산박(梁山泊)이라는 호수 한가운데에 수상요새를 거점으로 삼기까지의 경과와 이후 조정에 귀순해 절강(浙江)에서 일어난 방랍(方臘)의 반란을 평정해 공을 세우는 내용으로 구성(構成)돼 있다. 그러나 청조 초반 김성탄(金聖嘆)이 ‘100회본’ 중 송강 등 108호걸이 모두 양산박 요새에 결집해 서열(序列)에 따라 각기 부서를 정하고 임무를 분담(分擔)하는 대목까지 서술한 70회만 택하고 나머지는 위작(僞作)..
실력과 지반이 약소세력인 양산집단 괴수 산동 송강이 북송사대적구로 불린 이유 ‘수호전(水滸傳)’에서 하북전호(河北田虎), 회서왕경(淮西王慶), 강남방랍(江南方臘), 산동송강(山東宋江)은 북송말기의 '사대적구(四大賊寇)'라고 불린다. 전호, 왕경, 방랍의 세 명 대왕은 모두 영역이 양산(梁山)보다 컸다. 인력, 재력, 물력, 영향력으로 볼 때 양산은 이들에 한참 못 미친다. 송강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들 삼대 대왕(三大大王)과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을까? "사대적구(四大賊寇)"를 쓰는 순서에 대하여도 이런 견해(見解)가 있다. 송강(宋江)이 그중 가장 강했기 때문에 첫머리에 이름이 놓인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송강은 초안(招安) 후에 조정을 위하여 나머지 세 적구를 소탕(掃蕩)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실..
수호전 무공이 양산오호 수준인 인물은 양산에는 4명 양산밖에는 15명 존재 수호전 108성(水滸傳百八星)은 '수호전'에 등장하는 108명의 호걸을 가리킨다.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역사 기록에는 송강(宋江)이 36명을 이끌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72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송강은 실제 인물이나 기록에 따라서 송강이 36명에 포함되기도 하고 '대송선화유사(大宋宣和遺事)'같은 책에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36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진 인물은 양지(楊志), 임충(林冲), 왕영(王英), 노지심(魯智深), 사진(史進), 무송(武松) 정도다. 공식적인 역사 기록상에는 "송강이 36명의 무리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중국 4대 미인이며 삼국지 작품세계 중 최고의 미녀인 초선의 신세내력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초선(貂蟬)은 그 미모와 함께 혼란(混亂)한 세상에서 계략의 희생양(犧牲羊)으로 살게 된 비극적(悲劇的)인 운명으로 인해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유명(有名)한 인물이다. 미모를 이용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켜 동탁(董卓) 세력을 몰락시킨 일화(逸話)는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한번쯤 들어는 봤을 이야기일 것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초선이 등장하는 부분은 조정의 실권을 잡고 폭정(暴政)을 휘두르던 동탁(董卓)이 반동탁연합전선(反董卓聯合戰線)과의 전투로 인해 낙양(洛陽)에서 장안(長安)으로 천도하였을 ..
나관중과 일부 작가들 호기심과 허구로 만들어낸 초선의 최후에 대한 7가지 판본 초선(貂蟬)에 대하여 많은 페이지를 할애(割愛)했던 나관중(羅貫中)은 장안병변(長安兵變)후의 초선의 행방(行方)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가치(存在價値)가 없어졌으므로 다시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작가들은 여전히 그녀의 최후에 대하여 호기심(好奇心)을 놓치지 않았고 허구(虛構)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결말(結末)에 있어서는 "참사(慘死)"와 "선종(善終)"의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참사계열(慘死系列)을 보자. 여기는 최소한 4개의 버전이 있다. 첫째 버전: 곤극(昆劇) '참초(斬貂)'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여포(呂布)가 백문루(白門樓)에서 조조(曹操)에게 참수된 후 그의 ..
정사 삼국지와 역사상 초선(貂蟬)은 실재하지 않고 소설가들이 꾸며낸 이름 초선(貂蟬)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왕윤의 수양딸로 등장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여포가 동탁의 이름 없는 시녀와 염문(艷聞)을 가졌다는 정사의 기록과 왕윤(王允)이 여포를 부추겨 동탁을 죽이게 했다는 사실을 연의에서 각색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선(貂蟬)이라고 하면 남녀노소 모르는 사람이 없다. 고전소설 '삼국연의(三國志演義)'에 상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녀는 삼국시대의 미녀로서, 사도(司徒) 왕윤(王允)의 집안에 있는 가기(歌妓)였는데 왕윤을 도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하여 ‘연환계(連環計)..
삼국연의 촉나라 최고급 모사인 방통의 양모(陽謀)와 제갈량의 음모(陰謀)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서기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부터 서기 280년까지 중국 대륙(大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 연의(고전역사소설)로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쓴 책이다.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집필한 ‘삼국지(三國志)’와 배송지(裴松之)의 ‘삼국지주(三國志註)’에 수록된 야사(野史)와 잡기(雜記)를 근거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취하여 쓴 작품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 하여 모두 24권 240칙(則)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제갈량과 방통은 모두 ‘삼국연의’의 최고급 모사(謀士)이다. 나란히 일룡일봉(一龍一鳳)으로 불린다. 대은사(大..
홍루몽 200여 년 전 세계로 진출할 것 상해세계박람회 백 년 전 예견한 사람들 중국 국내에서 ‘홍루몽(紅樓夢)’ 최초의 운명은 매우 굴곡적(屈曲的)이었는바 일부 사람들은 "유행 바이러스"라고도 여겼다. 1793년 11월 23일, "인이호"로 불리는 화물선(貨物船)이 절강의 한 항만에서 출발해 20여 일간의 항해를 거쳐 12월9일 일본 나가사끼항에 도착했다. 당일 화물을 검사할 때 67종의 중국도서(中國圖書)를 발견했는데 그중 이름이 ‘신수전부수상 홍루몽’이고 총 9부 18조로 되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향후 전 세계를 풍미(風味)한 오늘날의 ‘홍루몽(紅樓夢)’이였으며 그때의 항로가 ‘홍루몽(紅樓夢)’이 해외로 진출한 최초 기록으로 남게 되였다. 19세기 일본, 조선을 풍미 : 문화적 연원(淵源)으로 말..
의기투합이란 마음이나 뜻이 서로 맞아 의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고 동고동락 '수호지(水滸志)'에는 탄압(彈壓)받는 민중의 절망적인 한숨과 좌절(挫折)이 있고 부패(腐敗)와 부정에 항거하는 열화 같은 분노와 반항(反抗)이 있다. 썩어 빠진 조정에 분연히 반기를 들고 탐관오리(貪官汚吏)를 통쾌하게 응징하는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의 활약은 민중들의 가슴을 고동치게 하고 그들의 울분을 달래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영웅담 형식(英雄譚形式)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본질에 흐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힘없고 가련한 민중의 애환(哀歡)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情報化時代)의 물결을 타고 지나친 기계화(機械化)와 함께 인간성의 상실을 개탄(慨嘆)하는 목소리가 높은 오늘날에 의기(意氣)를 목..